앳돼 보이는 한 여인이 말을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림이 있습니다. 영국 화가인 존 콜리어(John Maler Collier, 1850-1934)의 이 그림은 라파엘전파의 그림답게 무척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과연 이 여인은 무슨 이유로 이런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을까요? 그림의 제작시기가 1898년인 것으로 보아 세기말 증상이 팽배하던 그 시절의 어떤 사회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아래 그림은 John Maler Collier, Lady Godiva, 1898, Oil on Canvas, 141 x 181 cm, Courtesy of the Herbert Art Gallery & Museum, Coventr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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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주인공은 고다이바(Godiva)는 11세기인 1040~80년경 영국 워릭셔 주(州) 코번트리(Coventry)에 살았던 ‘전설적인’ 앵글로색슨족 귀부인이랍니다. 아주 오래된 기록에는 ‘Godgifu’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고다이바의 남편은 코번트리 지방을 다스리던 레오프릭(Leofric)백작이었는데, 그는 중세 영주가 가진 막강한 권한을 남용하고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못된 귀족이었나 봅니다. 레오프릭의 영지에 사는 농민들은 과중한 세금으로 고통스럽게 살아야했습니다. 이렇게 영주의 폭정에 굶주리는 농민들을 동정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영주의 부인인 고다이바였습니다. 고다이바는 틈만 나면 남편인 레오프릭 백작에게 농민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경감하고 괴롭히지 말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부인의 잔소리로만 여긴 레오프릭 백작은 화가 나서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 네가 정말 농민들을 걱정한다면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말고 말을 타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저자거리를 한 바퀴 돌아와라.’며 조롱을 했습니다. 이런 조건을 걸면 다시는 그런 잔소리를 못할 줄 알고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한 것입니다.

지금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 또는 대의를 위해 알몸시위를 벌이는 여성들이 있긴 하지만 11세기 상황에서, 그것도 영주의 부인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고다이바는 농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단을 하고 거리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레오프릭 백작의 영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고다이바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시간에 외출도 안하고 창문도 열지 않기로 하고,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 내다보지 않기로 했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다이바 부인의 사랑과 희생정신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고다이바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거리에 나서 결국 농민들의 세금을 줄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귀부인이 농민들을 위해 나신으로 말을 탄 여인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의 마음에 감동을 받아 그 정신을 기리고 지금도 그녀를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 레이디 고디바)”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초코릿 고디바 !

이런 이야기에는 꼭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 레오프릭 백작과 코번트리 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인의 선행에 감동을 받은 레오프릭 백작은 그날이후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인과 함께 수도원을 설립하였는데, 이 수도원이 코번트리를 그 일대의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코번트리는 15세기에는 모직물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 도시가 대부분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어 지금도 교육 도시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코번트리 시에는 오늘 날의 코번트리 시가 있게 한 “레이디 고다이바”를 기념하는 상징물과 행사들이 있습니다. 제일 유명한 것이 코번트리의 대성당 앞에 있는 말을 탄 그녀의 동상(Statue of Lady Godiva, Coventry)입니다. 그리고 1678년부터 코번트리 박람회 행사를 하면서 당시 그녀의 모습대로 말을 타고 시내를 지나가는 ‘고다이바 행진(Godiva Ride)’을 하고 있습니다. 11세기와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창문도 닫지 않고, 코번트리 시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숭고한 희생정신이 빛나는 고다이바와 함께 기록되는 ‘못된 놈“도 하나 있습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감히 이 아름다운 여인의 ‘알몸순례’를 볼 수 없었고, 또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광경을 훔쳐 본 놈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고을 양복 재단사인 ‘톰 브라운’이란 자(者)였습니다. 이 소문이 사람들에게 퍼지고 그 후 톰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 후 몰래 훔쳐보는 놈을 서양에서는 ‘peeping Tom’이라고 부릅니다. 조금 문자를 쓰자면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코번트리 시민들은 지금도 이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나 봅니다. 코번트리 시의 한 건물에는 지금도 매시간 정시가 되면 ‘레이디 고다이바’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장면을 훔쳐보려고 뻐꾸기처럼 얼굴을 내미는 ‘피핑톰’을 보여주는 시계(Lady Godiva Clock in Broadgate, Coventry)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가면 ‘고다이바’라는 초콜릿 상점이 있습니다. 원래 벨기에 초콜릿이라고 하는데 이 회사의 창업자인 ‘조셉 드랍’의 부인이 고다이바의 뜻을 받들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초콜릿을 만들자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 관행이나 상식, 불의한 힘의 역학에 불응하고 대담한 역의 논리로 난관을 뚫고 나가는 정치”를 일컬어 고다이버이즘이라고 합니다.